솔직히 저는 혈당 스파이크라는 말을 들어도 "당뇨 환자 얘기겠지"라고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연속혈당측정기(CGM)를 팔에 붙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20만 명씩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레벨스 헬스(Levels Health)는 혈당 수치를 단순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숫자가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해주는 앱입니다. 그리고 그 접근 방식이 스타트업 마케팅 교과서를 다시 쓸 만큼 날카로웠습니다.

혈당 최적화, '정상'과 '최적'은 다르다
제가 처음 레벨스를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혈당 측정기는 이미 있는데, 앱이 뭘 더 해줄 수 있지?" 그런데 실제로 들여다보니 핵심은 기기가 아니라 언어였습니다.
레벨스가 내세우는 개념은 '건강 최적화(Health Optimization)'입니다. 여기서 건강 최적화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내 몸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병원에서 "정상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과, 실제로 몸이 최상으로 굴러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뜻이죠.
레벨스의 창업자 조쉬 클레멘테(Josh Clemente)는 스페이스X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크로스핏 트레이너까지 겸할 만큼 건강을 자신했던 그가 원인 불명의 피로감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혈당측정기를 직접 구해 2주간 자기 몸을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건강식이라 굳게 믿었던 고구마와 현미가 그를 당뇨 전 단계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반전이 주는 충격은 꽤 큽니다. "잘 먹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 사람은 데이터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하거든요. 레벨스는 그 심리를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레벨스가 제안하는 기준도 주목할 만합니다. 일반적으로 공복 혈당 100mg/dL 미만이면 정상으로 봅니다. 그런데 레벨스는 공복 72~85mg/dL, 식후 110mg/dL 이하를 '최적(Optimal)' 범위로 제시합니다(출처: Levels Health 블로그). 정상과 최적 사이의 그 간격이, 레벨스가 만들어내는 비즈니스의 본질입니다.
맥락 언어로 바꾼 고객 전략
레벨스가 남다른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언어 설계'를 고릅니다. 조쉬 클레멘테는 더 좋은 혈당측정기를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검증된 대기업 기기를 그대로 쓰고,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했습니다. 그가 붙인 이름이 '맥락화 레이어(Contextualization Layer)'입니다. 쉽게 말해, 숫자 위에 해석을 한 겹 씌우는 구조입니다.
"혈당이 160mg/dL입니다"라는 수치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 점심이 오늘 혈당 점수를 10점 높였습니다"라는 문장은 행동을 바꿉니다. 이 차이가 레벨스의 핵심 가치입니다.
앱 안에는 이 철학이 두 가지 기능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식사별 혈당 비교 기능입니다. 어제 먹은 감자와 오늘 먹은 고구마의 혈당 곡선을 겹쳐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A/B 테스트를 내 몸에 적용하는 셈이죠. 제가 직접 써봤다면 분명 오트밀과 현미밥 중 뭐가 더 문제인지 먼저 비교했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혈당 안정성 점수(Stability Score)입니다. 여기서 안정성 점수란 하루 동안 혈당이 얼마나 들쭉날쭉하지 않았는지를 60~100점 사이의 숫자로 환산한 지표입니다. 식사, 수면, 운동 데이터를 종합해 산출하기 때문에 단순 혈당 수치보다 훨씬 입체적입니다.
공동창업자이자 현 CEO인 샘 코르코스(Sam Corcos)는 마케팅 방식도 달랐습니다. 그는 베타 신청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3년간 수천 통의 통화를 나눴습니다. "삶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 하나로 시작한 인터뷰였습니다. 이는 'JTBD(Jobs To Be Done)' 전략을 따른 것입니다. JTBD란 고객이 자신의 삶에서 해결하기 힘든 과업(Job)을 처리하기 위해 제품을 고용(Hire)한다는 관점으로, 1991년 토니 울윅이 제안하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정립한 분석 도구입니다.
그 결과 도출된 핵심 고객 페르소나가 "펠로톤을 쓰면서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식단에 이미 투자할 의지가 있고, 큰돈을 쓸 준비가 된 집단. 이 페르소나에 맞춰 영업하자 전환율이 90%를 넘었습니다. 짐작이 아닌 데이터가 만들어낸 숫자입니다.
고객 전략이 콘텐츠가 되는 방식
레벨스가 고객을 모으는 데 광고를 쓰지 않았다는 점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신 택한 것은 글이었습니다. 샘 코르코스는 고객 인터뷰마다 이런 질문을 끼워 넣었습니다. "당신의 SNS 피드에 뜨면 무조건 클릭할 제목이 뭔가요?" 여기서 나온 답들이 레벨스 블로그의 목차가 됐습니다.
'피부와 혈당의 관계', '수면이 대사에 미치는 영향' 같은 주제들은 SEO(검색엔진최적화) 관점에서도, 독자 관심사 관점에서도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SEO란 구글 같은 검색 엔진에서 특정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내 콘텐츠가 상위에 노출되도록 최적화하는 전략입니다.
레벨스가 글 한 편에 투자하는 비용은 5,000~10,000달러(약 700만~1,400만 원) 수준입니다. 글 하나에 30~40개의 참고 문헌을 인용하고, 의학박사의 검토를 거쳐 발행합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 기준이면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이건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를 자연스럽게 갖게 됩니다. 뻔한 건강 정보와는 질감이 다르거든요.
결과는 수치로 확인됩니다. 콘텐츠 시작 3개월 만에 구글 검색 유입이 0%에서 20%로 올랐고, 광고비는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2025년 12월 기준 연간 블로그 방문자는 200만 명을 넘겼습니다(출처: 롱블랙).
이 전략에서 배울 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데이터를 그냥 보여주지 말고,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해서 전달할 것
- 가상의 타깃을 상상하지 말고, 직접 물어서 실제 고객을 정의할 것
- 콘텐츠에 돈을 아끼지 말 것. 전문성 없는 글은 신뢰를 쌓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초기에 광고로 트래픽을 사는 방식을 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레벨스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콘텐츠로 신뢰를 먼저 쌓고, 그 신뢰가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순서가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훨씬 단단한 고객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레벨스 헬스 앱은 한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나요?
A. 현재 레벨스 헬스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속혈당측정기(CGM) 기기 수급과 의료 규제 문제가 있어 국내 직접 사용은 어렵습니다.
Q. 혈당 안정성 점수(Stability Score)는 어떻게 계산되나요?
A. 식사 후 2시간 동안의 혈당 변화 폭을 기반으로 하되, 수면과 운동 데이터를 다른 앱에서 연동해 종합적으로 산출합니다. 단순히 혈당이 높고 낮음만 보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됐는지를 60~100점 척도로 환산합니다. 90점 이상이면 우수, 85점 이상이면 성공적인 컨디션으로 봅니다.
Q. 당뇨가 없어도 혈당 관리가 필요한가요?
A. 레벨스의 핵심 주장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혈당 변화는 피로감, 집중력, 기분과 직접 연결됩니다. 질병이 없는 '정상' 수치라도 혈당이 자주 요동치면 일상 컨디션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같은 음식도 혈당에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뇨와 무관하게 관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결론
레벨스 헬스를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은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숫자를 어떻게 말로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그 데이터가 내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레벨스는 그 연결고리를 언어로 만든 회사입니다.
건강 앱 하나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아깝습니다.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서비스, 그리고 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 가능한 원리입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나 콘텐츠가 있다면, 한 번쯤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숫자를 주고 있는가, 아니면 맥락을 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