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 "차라리 짧고 굵게 살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해가 가기도 했어요. 어차피 죽을 건데, 먹고 싶은 거 먹고 살자는 논리가 그들 세상에서는 그렇게 틀린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굵고 짧게"는 없고, 선택지는 "굵고 길게" 아니면 "가늘고 짧게"뿐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속노화 중인 이유
가속노화(accelerated aging)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속노화란, 유전적 속도보다 더 빠르게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몸이 나이보다 빨리 늙는 것입니다.
이게 남 얘기가 아닙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0대 고혈압 환자는 4만 300명으로 2018년 대비 30% 증가했고, 같은 기간 20대 당뇨병 환자는 무려 48%나 늘었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 또래 얘기인데, 처음 수치를 봤을 때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정 교수가 주목한 원인 중 하나는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입니다. 초가공식품이란 원재료의 형태는 사라지고 식품의 추출물이나 인공 첨가물 위주로 만들어진 식품으로, 라면이나 탄산음료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지기능이 약 네 배 빠르게 저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야근할 때마다 라면이나 편의점 간식에 손이 갔는데, 그게 피로를 푸는 게 아니라 쌓는 행동이었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비유가 정확합니다. 지금 편하게 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써야 할 신체 기능을 미리 당겨 쓰는 것입니다.
한국은 운동 부족 인구 비율이 58.1%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운동을 하지 않는 국가입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먹는 것도 문제인데 움직임까지 줄었으니, 가속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입니다.
저속노화 식단, 맛없지 않냐는 질문에 답하면
저속노화 식단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감이 있었습니다. "잡곡밥에 렌틸콩?"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맛없는 걸 억지로 먹으면서까지 오래 살아야 하냐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 교수의 설명이 흥미로웠습니다.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뇌가 초가공식품에 길들여져 있다는 겁니다. 어두운 방에 처음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점차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미각도 자극에서 벗어나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게 된다고요.
MIND 식사법(Mediterranean-DASH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지중해식 식단과 혈압 조절 식단을 결합한 방식으로,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식사법입니다. 당 지수가 낮은 렌틸콩이나 잡곡밥을 기본으로 하고, 올리브유를 요리에 활용하며, 채소와 과일 섭취를 늘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비용이 많이 들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해보면 다릅니다. 잡곡밥에 계란 프라이, 올리브오일 한 스푼, 밑반찬 몇 가지면 한 끼 단가가 3,000원 이하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히려 편의점 간식이나 배달 음식보다 더 저렴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이 스트레스를 푼다고 믿는 분들이 많지만, 메커니즘은 반대입니다.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빠르게 오르고 이후 폭락하면서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은 혈당 생성과 기초 대사 유지를 담당하지만, 과도하게 분비되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충동 조절 능력을 약화시킵니다. 결국 다시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커피에 시럽을 넣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봤는데, 처음 2주는 확실히 심심하더니 3주쯤 되니까 아메리카노 자체의 맛이 더 잘 느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작은 변화였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분명했습니다.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 꼰대가 된다는 말의 무게
솔직히 이 부분이 저한테 가장 무겁게 와닿았습니다. 음식이나 운동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꼰대가 되는 것도 노화 때문"이라는 말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전두엽은 합리적 판단, 공감 능력,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핵심 영역입니다. 그런데 30대 후반부터 전두엽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기 시작합니다. 전두엽이 약해지면 유동지능(fluid intelligence)도 함께 떨어집니다. 유동지능이란 새로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으로, 쉽게 말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뇌의 유연성"입니다.
툭하면 화를 내고, 다른 의견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는 것. 이게 단순히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 기능 저하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꼰대였던 게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느껴지겠구나 싶은 생각에요.
이 지점에서 저속노화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도, 겉으로 젊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나이 들어서도 공감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다양한 세대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의지만으로는 유지하기 힘들고, 습관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도파민 리모델링이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중요합니다. 도파민 리모델링이란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쾌락 위주로 형성된 뇌의 보상 체계를 서서히 재구성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오후 4시에 갑자기 단 것이 먹고 싶어진다면 그게 단순한 배고픔인지, 아니면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이 원인인지 잠시 생각해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멈추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전두엽 기능을 유지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저속노화 식단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너무 불편하지 않나요?
A. 처음엔 번거롭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해보면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잡곡밥으로 바꾸는 것, 커피에 시럽을 빼는 것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부담이 적습니다. 한 가지를 바꾸는 데 익숙해지면 그다음 단계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저도 처음엔 회의적이었지만, 작은 것을 하나씩 바꾸면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Q. 운동할 시간이 없는데도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나요?
A. "따로 운동 시간을 내지 말라"는 조언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거나, 짧은 거리를 걷는 것처럼 이동 시간을 운동 시간으로 바꾸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스마트워치 측정 결과에 따르면 계단 이용만으로도 하루 400~500칼로리 소모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Q. 젊을 때부터 신경 써야 하나요, 아니면 40~5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나요?
A. 빠를수록 좋다는 건 사실이지만, 늦어서 소용없는 시기는 없습니다. 다만 20대부터 고혈압과 당뇨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30대 이전에 인식을 바꾸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합니다. 저처럼 늦게 시작한 분들도 일단 시작하면 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Q. 스트레스받을 때 단 음식을 먹으면 안 되나요?
A. 스트레스를 풀려고 먹는 달고 자극적인 음식이 실제로는 코르티솔 분비를 촉진해 스트레스를 더 쌓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가끔 한 번 먹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해소의 주된 방법으로 삼으면 악순환이 고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잠시 멈추고 원인을 생각해보는 습관이 더 효과적입니다.
결론
저속노화는 건강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지금 당장 습관을 점검해볼 이유가 있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커피 한 잔에서 시럽을 빼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한 층 계단을 오르는 것에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작은 것을 하나씩 바꾸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몸이 반응합니다. 저도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참고: https://longblack.co/note/1164?utm_source=longblack_search_web